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함

‘양심’의 역할은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다. 분별한 후에는 선 쪽을 택하라는 것이 우리 안에 양심을 두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다. 동물에겐 없는,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선한 생각과 마음을 품고 선한 행위와 관계, 선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궁극적인 뜻이 있다.

선 아닌 악을 택하면 가책이 따른다. 가책은 잘못을 저지름에 따라 생성되는 불순물이다. 그 불순물이 쌓여가면 양심이 더러워지고 오염되어서 선악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손이 더러울수록 더러운 게 묻어도 모르는 격이다. 그래서 가책은 그때그때 처리해야 한다. 처리법은 한 가지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갚을 수 있는 것이면 갚아야 한다. 가책을 씻어낼 유일한 길이다.

결국 가책의 근원은 잘못 자체보다 잘못 저지른 사실을 감추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근본이 악하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는 일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렇다면 초점은 잘못보다 잘못을 드러내는 여부에 있다. 가책은 속박이고 드러냄이 해방이다. 진실과 거짓의 갈등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먹고 숨었던 일, 벌거벗은 수치를 가렸던 일로부터 이 순간까지 계속된다.

신앙인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 중의 하나가 죄의 유무에만 마음 쓴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보시는 것은 죄의 유무보다 죄의 시인 여부다. 죄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지만 회개함이 없다면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게 뭔가. ‘정직함’이다. 정직이란 죄를 안 짓는 게 아니라 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정직은 사람 됨됨의 바탕이고 생명력이다. 공직자들이 부도덕과 부정에 연루됐어도 스스로 시인하고 사과하면 용서받는 것이 그 증거다. 부도덕과 부정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관점에서는 선악의 정의를 정직과 부정직으로 볼 수도 있다.

자기 죄인 됨, 허물과 부족을 시인하고 드러내는 일이 없으면 아무리 의롭다고 해도 외식하는 바리새인에 불과하다. 사람의 의로운 정도는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어서 정직하지 못하면 그 의로움은 아무 가치도 없게 된다. 우리는 양심을 가지고 있어서 ‘정의’를 안다. 하지만 정의는 근본이 악한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정의 구현’보다 ‘정직함’이 먼저다. 서로가 정직하기를 힘쓰면 정의가 이루어져 간다. 정직함이 세상을 밝히는 길이다.

정직은 이웃사랑과도 직결된다.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가 남도 용서하게 되는 법이다. 용서받음의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하는 정직한 사람이 남을 품을 수 있다. 나는 정직한가. 얼마나 정직한가. 자신의 정직함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혼자 있을 때의 나와 사람들 속에서의 나가서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