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만큼 게으른 것

30대 초반 직장생활 시절 사내 야구대회에서 우익수를 맡았었다. 타구가 높이 솟아서는 3루선 바깥쪽에 떨어지는 파울볼이었는데 뛰어가 봐야 못 잡을 것 같아서 몇 걸음 달려가다 말았다. 다음 이닝에서 타순을 기다리던 중 감독을 맡았던 상사가 말했다. “아까 그 파울볼 왜 가만히 보고 있었나.” 내 딴엔 답이 분명했다. “못 잡을 공… 이라서요.” 그때 그 감독의 눈을 기억한다. 그토록 깊이 마음에 찔렸던 일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 게을렀던 것, 그리고 그 게으름에 핑계가 있었다. 게으름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 최선이란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신이 설정해놓은 자신의 한계가 쉽고 넉넉한 것이라면 최선 다했다는 말은 그만큼 하기 쉽고 게으르단 생각은 거의 않게 된다. 게으름 알아채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별 힘들지 않은 일, 하고 싶은 일에만 열심 내는 것을 열심이라 할 순 없다. ‘열심’히나 ‘부지런’ 같은 말을 쓰려면 결단과 도전, 땀 흘림과 인내, 전력투구 같은 것이 드러나 보여야 한다. 변명이나 핑계의 실체는 알고 보면 대부분이 자기 편의대로 자기가 만들어놓은 한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게으름엔 핑계가 따라다닌다.

한계다운 한계를 향해 힘을 다하고 있다면 변명이 필요치 않을 뿐 아니라 실패해도 거리낌이 없는 법이다. 핑계가 있다는 사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증거다. 열심 내지 않은 자책을 덮어보려는 구실이기가 쉽다. 성장과 발전은 한계를 극복해가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다. 근육운동에서 어렵잖은 무게 정도만 들어 올려서는 근력이 자랄 수 없듯이 편안한 한계 안에서는 성장도 발전도 없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잠재를 우리 속에 예비해 놓으셨다. 자기 한계를 꾸준히 극복해갈 때야 그 잠재가 현실로 바뀌는 것이다. 결국 한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뜻의 기본이고 성장의 필수 요건이다.

신앙인들이라면 핑계나 변명으로 하나님 뜻을 거역하고 있을 순 없다. 변명이 잦은 만큼 게으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아끼는 만큼 핑계는 늘게 마련이고 부지런한 만큼 변명은 줄게 마련이다. 거부감 느낄 때마다 생각을 거슬러서 품으려 힘써보자. 못한다고 하기 전에 하겠다고 다짐해보자. 변명이 떠오르는 순간마다 게으른 자신을 대적해보자.

어느 외국인 기자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특성 중에 “핑계가 많다”가 있던 것을 기억한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해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맡기신 일에 충실했는지를 돌아본다. 대학 캠퍼스에 선교하라고 보내셨는데 핑계가 없지 않은 것을 보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주님을 대할 마음이 시원치 않아서 조용히 새로운 다짐을 한다. 새해에는 모든 일에서 한계에 도전하기를, 최선다운 최선 보이기를, 부지런함으로 변명의 여지 없애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