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누리자

목회 초기엔 선배 목사들의 도움과 조언이 절실했던 기억이다. 늦깎이 목사였던 내게 그분들의 깨달음과 체험은 소중한 자산이었고 목회의 지표가 되었었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누림’을 강조하시던 어느 목사님은, 무엇이든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누리라고 늘 말씀해 주셨고 스스로 그렇게 실천하셨다. 그 덕분에 ‘누림’은 내 삶과 목회사역에서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이 땅의 삶은 단 한 번의 기회요 길지 않은 시간이다. 생명이 주어진 동안에 하나님이 주신 만물과 사람들, 환경과 시간을 감사하며 누리는 일은 선택이기보다 의무다. 신앙 없이도 공감할 일이고 믿음이 있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삶을 누리려면 환경과 조건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건 선입관이다. 그보다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가는 것이 먼저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안주하려다가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흔한 현실이다. 사람마다 성향과 재능, 이상이 달라서 선호하는 바와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만 자신의 것만 고집하다 보면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만다. 관심 영역 너머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어떤 목사님이 ” 하기 싫은 일일수록해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그만큼 그 일 뒤에 새로운 체험, 깨달음과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일 거다. 먹기 싫은 음식일수록 먹어보는 것, 보기 싫은 사람일수록 만나보고, 듣기 싫은 말일수록 들어보는 것이 더 넓은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원수 사랑이나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가르침도 결국은 더 넓게 누리면서 살라는 말씀이다.

믿음의 청년들에게서 열정과 열심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 즉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은 갈수록 보기 어려워진다. 삶의 현실은 고달프겠지만, 문이 좁고 길이 험해 보여도 그 너머에 자신 위해 예비된 좋은 것들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리기 원하시는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일은 신앙인에게는 기본이다. 신앙생활은 풍요로워야 한다.

물질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누리는 삶이기 때문이다. 만물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구원의 소망을 심어주신 예수님, 우리 곁에서 매 순간 인도하시며 돌보시는 성령님 모두가 진지하게 누려야 할 은혜다. 그 은혜는 ‘나’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때부터 온전히 맛볼 수 있게 된다. 선행, 봉사, 전도와 같은 하나님의 일들을 온전하게 감당하는 것도 울타리를 넘어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방패, 나의 목자, 나의 능력 …”이라는 다윗의 고백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맘껏 누리는 그의 모습을 느낀다. 믿음이란 결국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누린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지만 혹 자신에게 매여서 그만큼 못 누리고 있는 때문은 아닐지. 하나님을 맘껏 누릴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 담장을 뛰어넘자. 주님 품으로 힘써 달려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