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새로워지라

한국에서 목회할 때의 기억이다. 노회 목사들 모임에서 새로운 교회로 부임해 가는 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던 중 동료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삼 년 치 설교 버셨네요.” 이전 섬기던 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삼 년 정도는 ‘재탕’할 수 있으니 설교 준비하는 수고를 그만큼 덜 것이란 말이다. 새벽기도를 포함해 매주 열한 편의 말씀을 준비해야 했던 설교자로서 부러운 생각이 잠시 들었었다. 하지만 곧 소중한 깨달음이 왔다. 대학 교수가 새로운 연구 없이 몇 년 전 강의를 계속한다면 학자라 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발명과 창의적인 개발이 없었다면 문명이란 게 가능했을 건가. 설교도 늘 새로운 말씀이어야 한다. 대상과 때와 상황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가 설교 시간 채우는 사람의 도구로 전락할 순 없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냄새도 시간이 지나면 그 냄새에 익숙해진다. 감동적인 영화도 거듭 보면 감동이 처음 같지 않기 마련이다.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이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덜하게 느껴진다. 그런 일들은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각을 그렇게 만드신 듯이 있지 않을까 한다.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아, 좋다” 하는 데에 머물러있지 말고 계속 새로워지라 하시는 뜻일 거다. 인간은 분명 창의적인 존재다. 동물들의 삶은 창세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 없지만 삶은 끊임없이 새로워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워진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씀은, 우리를 창의력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이기도 하다. 옵션이나 취미로 창의력 주신 게 아니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삶을 새롭게 만들어가라 하시는 소중한 명령이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그 창조하신 뜻을 믿는가. 그렇다면 삶의 모든 일에서 자신이 얼마나 새로워지려 하고 있는지, 창의적이기를 힘쓰고 있는지를 늘 돌아봐야 할 것이다. ‘창의’를 예술적인 것에만 적용할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삶의 모든 분야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대상이다. 청년 사역에서도 항상 강조하게 되는 것이 끊임없이 새로워지라는 권면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서도 주된 관심사는 얼마나 자신이 새로워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머리가 희어가면서 더더욱 맘이 쓰인다. 혹 이전 모습이나 삶에 안주한 채 그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지. 하나님께서 내 안에 두신 창의력을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 건지.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진지하게 힘쓰고 있는지…. 마음속에 ‘재탕’ 의식 같은 게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자.

사물을 새롭게 만들어가려는 도전 의식이 없다면 생명 없는 삶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가시는 구원도, 성령께서 이루어가시는 성화도 새로워짐이다. 새로워지기를 스스로 힘쓰는 삶을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그 삶을 기쁘게 사용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창의적이기를 힘쓰는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도우실 땐 능치 못할 일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