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타락해간다

“그 사람 그럴 사람 아닌데, 착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어느 날 상상 못할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어째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그건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돼 왔던 일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조금씩 변해갔던 것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했던 거다. 그러니 결과만 봐서는 입이 벌어질 일이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교통 법규 위반으로 티켓을 받는 경우가 거의 우선멈춤이나 회전이고 속도위반은 드물다. 고속도로에서도 어지간해선 규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조금씩 대담해져서 70마일이 되고 75마일이 된다. 그리곤 무심코 80마일을 넘겼다가 처음으로 딱지를 뗀다. 그렇게 되기까진 시간이 꽤 걸린다. 자신도 모르는 새 변해가는 거다. 영화의 등급 기준이 좋은 예다.

노출이란 것을 꽤 어렵게 여기던 시절이 그리 오랜 옛날은 아닌데, 십 년 전이면 R등급이었을 영화가 요즘은 PG-13이고 좀 더 있으면 PG로까지 내려갈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다. 십 년 전의 마음 상태로는 못 할 일을 지금은 버젓이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거짓과 부정에 무뎌지고 세속과 음란에 거리끼면 없어져 가는데도 그러려니 하는 것은 변해가는 속도가 사람의 감각으로는 못 느낄 만큼 아주 느리기 때문이다. 인류가 그렇게 서서히 타락해간다. 양심이 더럽혀져 가는 것을 스스로가 눈치채지 못한다. 환경 오염처럼 진행 중일 땐 느끼지 못하다가 재난을 닥치고 나서야 실색하고 그렇게 많이 악화한 것을 깨닫는 때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 세계가 경악했던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그 후 1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여기저기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 돼버렸다. 불치병, 난치병, 만성질환 등도 갑자기 걸리는 게 아니다. 서서히 진행되는 까닭에 자각을 못 하다가 손쓰기 어려울 정도가 돼서야 알게 된다.

신앙인들도 기도와 말씀 안에서 늘 깨어있지 않으면 모르는 새 서서히 믿음이 식어간다. 조금씩 세속화되어간다. 자신도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시하다가 수렁으로 빠져간다. 결국 깊은 곳에 이르러 꼼짝 못 하게 될 때에야 비명을 지른다. 사단의 전략이다. 조금씩 은근하게, 특히 잘하고 있다고 여기는 중에 살짝 곁길로 몰아간다. 혹 크리스천들과 교계의 윤리의식 수준마저도 감지 못하는 새 느슨해지고 있는 건 아닐지…. 지나친 염려이길 바랄 뿐이다. 무슨 일이든 시간 흐름에 따라 둔감해지고 쇠하기 쉽다. 열정도 사랑도 관계도 순수함도 정직함도 부지런함도 결단도 서서히 식어간다. 당연한 게 아니라 그만큼 어둠의 유혹이 은밀한 것이고 알아차리지 못하게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신앙인이라면 세속의 흐름을 거슬러야 한다. 믿음의 삶은 영적인 싸움이다. 사람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도 곁에서 도우시는 주님을 힘입으면 넉넉히 이긴다. 그런 모습으로야 빛과 소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