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나, 현실의 나

우리 안에는 두 가지의 ‘나’가 있다. 양심을 따라 선하고 올바르게 살기 원하는 ‘이상의 나’와 몸과 맘이 원하는 대로 따르기를 원하는 ‘현실의 나’다. 그 둘이 맞서 씨름할 때 과연 어느 쪽이 이길까. ‘이상의 나’라는 것에 대해 아예 무관심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 쓴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나’가 이기는 건 거의 보장된 일이다. 실제 삶에선 이상보다 현실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해 ‘현실의 나’란 정욕에 매인 모습이다. 정욕은 달콤하지만 채우고 채워도 만족함이 없다. 즉 ‘현실의 나’를 따르는 것은 스스로 노예가 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유와 평안은 ‘이상의 나’ 안에 있다. 그 안에서야 진정한 만족을 누린다.

믿음이 아니고는 ‘이상의 나’를 올바로 정의하지 못한다. 이상 자체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고 그 창조주의 뜻은 양심보다 더 높은 차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상’에 대해 맘 쓰게 되는 근원이 뭘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이상을 사모하는 기본 바탕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무시해도 될 일이 아니다. 무관심하다면 자신을 동물 취급하는 격이다.

‘이상의 나’에 대한 의식이 희박할수록 믿음의 삶은 이중적으로 되기 쉽다.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삶과 모습은 세속적, 정욕 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다. 잘 돌아보면 너무도 쉽게 정욕이 삶의 많은 일에서 판정승을 거두게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절제하기보다는 육신의 쾌락과 죄의 유혹에 별 거리낌 없이 빠져들어 가고 있는 거다.

신앙인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나님의 자녀라면서도 우린 얼마든지 어둠의 세력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은 사실을 천국 시민권 취득처럼 여길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늘 되새겨야 한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끊임없이 ‘이상의 나’를 향해 이끄시는데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현실의 나’에 집착하고 있을 순 없다.

결국 ‘이상의 나’의 표본은 사람 몸을 입으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으라고,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가라고,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뤄가라고 말씀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내 힘으로 세속적이고 정욕 적인 자신을 다스리고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믿음의 힘이면 극복할 수 있다. 주님을 바라보며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믿음이다.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가 포기할 일이 아니다. 현실 삶과 무관하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나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며 힘을 불어넣어 주시려 주님이 함께하신다. ‘이상의 나’를 더욱 강건케 하셔서 육신의 나, 현실의 나를 밟고 일어서게 하신다. 믿음을 가진다면 그 승리를 이뤄내야 한다.